이중공감문제는 자폐인과 자폐인 간의 의사소통이 비자폐인과 비자폐인보다 비교적 낫다는 연구결과입니다. 이중공감문제는 후속 연구에 의해서, 타당성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중공감문제에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첫째로 이중공감문제는 자폐인과 자폐인의 의사소통을 해명해도, 고기능 자폐가 아닌 자폐인 분들과 소통 방식을 해명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자폐인 간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소를 간과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둘째로, 이중공감문제는 자폐인과 자폐인 간 의사소통이 원활한 이유를 해명하지 못하고 뇌 신경학적 구조로만 신경전형인과 자폐인 간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는 불합리한 해명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중공감문제에서 제기된 두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중공감문제에 사회문화와 같은 환경적 요소가 접목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알렉산더 루리아의 문화역사적 이론이 결정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루리아는 인간은 처음에 타인을 분석한 후, 최종적으로 자기자신을 분석한다고 언명하였습니다. 인간은 사회 속의 영향 하에서 다양한 교육과 대인관계를 통해서 자기자신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등 자기인식이 구체화된다고도 언명하였습니다. 기존에 인간의 자기인식을 내재하는 불변의 속성 또는 뇌구조에서 찾는 것에 루리아는 반대했습니다. 이러한 루리아의 이론에 비추어 이중공감문제를 판단해보겠습니다.
첫째 문제에서는, 기존의 이중공감문제가 고기능 자폐라는 생물학적 우수성에 주안점을 설정하였으나, 소통은 뇌 구조, 유전 등 생물학적 요인 외에 환경 역시 지대한 영향을 초래합니다. 레벨1 자폐스펙트럼장애의 경우, 레벨2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생물학적 요소도 존재하지만, 환경적 요소도 존재합니다. 가령, 저는 레벨2의 자폐스펙트럼장애인데, 소근육 지체와 경계선 지능으로 인해 수작업에 지장이 초래됩니다. 레벨1 자폐스펙트럼장애 분들 대부분은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제게 노력하라던가 의지박약, 혹은 일을 하라고 압박합니다. 레벨1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지신 분 중에서 저를 이해하는 한 분은 제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고 존중해주시면서, 제게 자조를 습득시켜주시기 위해 노력해주십니다. 레벨1 자폐스펙트럼장애 분은 친지 중에 자폐 레벨3이 존재하여, 저를 이해해주고 그러십니다. 이것을 단지 레벨1 자폐스펙트럼장애와 레벨2 자폐스펙트럼장애 간의 유전적, 뇌 신경학적 차이라는 문제라고 환원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레벨1과 레벨2 자폐스펙트럼장애의 경우에도 상호 이해 속에서 공감과 소통이 원활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이중공감문제에서는 동일한 레벨1과 레벨1, 레벨2와 레벨2와 같은 소통도 문화요소에 영향을 초래받는 점 역시 이해해야 합니다. 루리아와 비고츠키는 인간의 언어는 사회문화와 역사의 심대한 반영으로써, 자연과 사회의 제(諸) 대상을 일반화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결과, 각기 상이한 양자 간 외국어의 소통은 자폐인과 자폐인 간에 소통에 영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외국에서 레벨2의 자폐스펙트럼장애 분과 레벨2인 저의 소통에서, 제가 외국어로 번역해도, 영국에서의 영어와 한국어 체계의 차이로 소통과 번역에 약간 지장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대체적으로는 신경전형인보다 장기적으로 대화가 유지되었습니다.
둘째 문제에서, 루리아는 인간은 선행(先行)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타인의 평가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여 자기 자신의 장단점 분석 등 자기인식과 자기분석이 타인의 평가로부터 후행(後行)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자폐인 역시 자신과 동일한 자폐인에게 자신을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혹은 그렇지 않은 자기보다 빈곤하거나 기능이 약하거나 강한 자폐인에게 자신을 평가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폐인은 자기와 동일한 자폐인을 보고, 자기 역시 괜찮은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 자폐인을 차별하는 사회와 대조되는 긍정적인 타인의 평가를 통해 자기자신 역시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자신과 다른 빈곤하거나 기능이 약하거나 강한 자폐인에게 평가받은 자폐인은 혼란스럽다가도, 의사라던가 치료사, 혹은 자기와 동일한 자폐인을 만나 그들로부터 자기의 긍정적 평가를 듣고, 자기 자신 역시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이중공감문제와 루리아의 문화역사적 이론과의 접목은 기존 신경다양성과 이중공감문제가 자폐인과 자폐인이 뇌 구조상의 차이로 소통이 원활하다는 것을 넘어, 자폐인 간의 문화와 다양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자폐인 간의 동질성과 유대감이 형성된다는 점을 해명할 수 있습니다. 특히, 루리아는 유물론에 기반하여 인간의 행동이 사회를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한 만큼, 자폐인 역시 사물과 타인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여 세상을 개조시키는 역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중공감문제와 문화역사적 이론은 자폐인이 수동적인 객체에서 사회에 단순히 장애의 사회적 모델에 입각해 사회변화를 주장하는 정형화된 장애운동에 불과한 정도가 아니라, 자폐인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와 동지 자폐인을 위해 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능동적 주체임을 해명할 수 있습니다(실제로, 장애의 사회적 모델은 자폐인을 경시했던 과거의 전례로 자폐인들의 능동적 운동을 해명하지 못하는 단점이 존재합니다). 특히, 유물론은 다양한 사회적 계층과 지위 속에서의 교차를 승인합니다. 당연히 기능이 약하거나 빈곤한 자폐인은 치료라던지 지원을 요구할 수 있고, 기능이 강한 자폐인은 사회적 수용과 다양성 인정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물론상 공동목표, 즉 대의명분을 위해 자폐인 간에서는 기능이 강하던 약하던 때로는 연대하거나 공통 관심사에 공감할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자폐인 간에는 다양한 지위와 교차성을 인정하면서도 공통을 위해 노력하는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 형성되게 됩니다.
루리아는 교육과 사물과의 접촉 역시 자기인식과 자기분석을 하는데 필요한 전제조건이라고 언명한바, 자폐인 역시 사물과 타인과 제한적 관심사가 있어도 자신의 형식대로 자기인식이라는 과정을 향해 계속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자폐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 역시 자폐인과 상이한 생물학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문화역사적으로 자폐인과 소통하기 위해 환경과 교육학적 측면에서 노력하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통합적인 측면 역시 시사할 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이중공감문제와 문화역사적 이론은 자폐인의 교육과 타인과의 교류, 사회 개조가 단순히 자폐인 개인 혹은 집단의 독점적, 배타적 이익이 아니라 사회가 자폐라는 다양성을 포용하도록 요구, 투쟁하는 자폐인들의 정당함을 뒷받침하는 명분을 제공합니다.
제언으로는 ToM 마음이론에 비판 비판이자 도전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자폐인에게 ToM이 없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ToM 마음이론은 다음 세 가지 점으로 비판받아야 타당합니다.
첫째, ToM을 관장하는 뇌의 거울뉴련의 경우 고기능 자폐인은 지체되었던 거울뉴런이 발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폐인은 만 30세 이후 지체된 거울뉴런이 급속도로 발전한다는 연구 및 그에 선행한 연구들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연구는 자폐인의 공감과 그에 수반되는 생물학적 토대인 거울뉴련이 전형적이지 않은 다양한 발달 속도와 양상을 표현된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둘째로, 자폐인 간에 사회문화적 맥락으로 공감의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그만큼 자폐는 단순히 뇌구조와 결손, 손상으로만 해명하기에는 곤란합니다. 공감은 다양한 양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폐인 저는 문어체를 사용하지만, 인터넷상 채팅으로 정중하게 격식있는 문어체로 “귀하께서 공감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와 같이 표현하여 공감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단일한 공감을 주장하는 ToM 이론은 문화역사적 이론과 이중공감문제, 거울뉴련 연구 등에 의해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 ToM 마음이론은 자폐인과 비자폐인을 이분화, 이원화했다는 부분으로 비판받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폐인 역시 ToM은 앞서 고찰한 두 가지 점으로 상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폐인이 비자폐인처럼 공감에 손상이 되었다는 것은 자폐인과 비자폐인 간에 오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자폐인은 연구결과, 정서적 공감이 비자폐인보다 우세합니다. 인지적 공감은 비자폐인이 우세합니다. 이 점을 고려하여, 자폐인은 비자폐인보다 인지적 공감이 약세이지만, 정서적 공감이 강한 점을 다양성으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사회는 공감에서 긍정적인 다양성을 존중하고 비폭력적 공감으로 조성되는 사회를 조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