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PD/C/CHE/CO/1 13 April 2022

유엔에서는 2022년 4월 13일 스위스 측에 스위스 내 각 지역에서 자폐 아동을 차갑고 습한 이불 시트로 신체를 덮어서 구속하는 치료를 금지시켰습니다. 이는 자폐 아동의 권익과 인권을 위한 최소한의 권고입니다. 
 한국에서 역시 자폐인들이 부당하고 강압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인권침해입니다. 무엇보다, 자폐 아동은 감각이 예민한 만큼 구속이라던지 신체적 자극이 없는 편안한 환경이 요청됩니다. 치료를 참칭하여, 자폐 아동에게 감각을 과민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혹시, 당신이 자폐인으로서 부당한 치료를 받는다면 이 결의안을 들고 항거하십시오. 당신은 존엄한 존재이며, 감각 예민과 자폐 특성을 존중받아야 하는 권리가 있습니다. 

저는 비정형 자폐증 내지 자폐스펙트럼장애 레벨2를 진단받은 사람입니다. 저는 본래, 저의 자폐 증세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박멸해야만 하는 악의 질병으로 취급하고 간주해야 했습니다. 저는 제가 자폐라는 사실에 좌절과 분노, 적개심, 자기혐오 등 너무나도 많은 고통 속에 제 자신을 학대해야 했습니다. 사실, 저는 성인기에 자폐를 진단받았습니다. 저는 성인기 이전으로 소급해 생각했습니다. 성인기 이전 제가 당한 학교폭력과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의 피해와 대학교의 각각 자퇴 등은 전부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저의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저의 정체성이자 일부이자 자부심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 근거는 첫째로, 저의 긍정적인 측면과 자폐를 결부시켜 저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폐의 긍정적 측면은 체계화된 사고와 규칙을 중시하는 규칙성, 루틴 등이 있습니다. 저 역시 루틴으로 체계화된 일이 있으면 항상 성실하게 반복합니다. 그 결과, 일에 숙련될 수 있습니다.
둘째, 제한된 관심사와 자폐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저는 제한된 관심사가 법학입니다. 저는 민법과 행정법을 공부하여 행정사 1차에도 합격했습니다. 저는 법학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해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 자신도 법학으로 해명합니다. 가령, 저는 저의 자폐스러운 루틴은 헌법과도 같은 영역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와 소통해야 할 때, 자폐를 숨기는 마스킹을 할 때는 국제법입니다. 저는 국제법 우위론 내지 국제법 일원론을 지지합니다. 당연히, 저는 헌법인 자폐스러운 특징보다 마스킹이 우위인 효력이 됩니다. 마스킹으로 저는 타인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저는 법학과 제한된 관심사로 세계를 비유, 유추하여 이해하면서 법학도 계속 암기되고 세계의 이해와 제 자신의 이해가 증폭되게 됩니다. 이것은 긍정적입니다.
셋째,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긍정하면, 제 자신의 자존감이 향상됩니다. 자폐를 완전히 박멸하거나 완치하는 것은 현재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한 것을 계속 고집하면 제 자신만 고통스러워집니다. 저는 자폐를 승화시켜, 제 자신과 자폐를 결부시키고 저와 자폐를 친구로, 제 정체성으로, 일체로 간주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자존감에 낫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자폐를 적으로 형성하면, 제 자신과 자폐가 이원화되어 매일 투쟁에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긍정하면 자폐의 고통이 심화되고, 자폐가 희화화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폐의 고통, 손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ABA 치료를 받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저는 자조가 되지 않아, 매일 샤워, 세면, 식사를 하면 스티커를 받으면서 긍정적 행동을 유도받은 것입니다. 자폐권리운동가들은 ABA를 비난합니다. 저는 자폐의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을 이원화합니다. 그 결과, 저에게는 ABA는 비난 대상이 아니며, 자폐의 부정적 측면을 제거하는 것은 자폐의 긍정적 측면을 보강, 보완하는 방식입니다.
총평하자면, 총평을 법학에 유추하여 설명하고 싶습니다. 종래, 저는 나쁜 관습, 즉 악습으로써 저의 자폐를 박멸해야 하는 대상으로 하는 관습법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관습은 전체 법 질서에 부합해야 하며, 관습법이 법에 저촉되면 조리가 대신 대체하듯이, 저는 조리에 의거 제 자폐의 긍정적 특성을 정체성으로 수용하며 앞으로 살려고 합니다.
제가 자폐에 정체성을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설령 저의 자폐가 의학으로 완전히 제거되어도, 과거 제가 자폐가 있었던 시기까지 소급하여 자폐로 인생을 영위한 시기까지 정지조건설마냥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기 떄문입니다. 누군가가 완치되기 전 과거 저의 지폐를 거론하면서 비난해도, 의학이 저를 완치시켜도, 자폐였다는 사실, 그리고 자폐로서 과거도 완치된 시점의 언젠가도 자폐 자체에 정체성이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
특히, 자폐 정체성은 타인을 해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현재 저의 고유한 특성 또는 자폐가 완치된 경우 저의 과거를 온전히 수용하는 것이고, 현재 자폐의 부정적 증상을 계속 제거하면서 지폐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제가 미래 혹여나 의학기술로 지폐를 완치해도 계속 저의 자폐였다는 사실는 저의 일부라는 “나”라는 정체성으로서, 타인이 저를 비난할 수 없게 하는 확립이기도 합니다. 위해한 증상을 제외한 저의 자폐는 그저 저의 일부이자, 특성이자, 정체성이자, 저의 이름과 같은 것입니다.
저는 지폐를 혐오하거나 비난하는 것도 원치 않지만, 자폐를 근거 없이 미화하는 것 역시 원치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인류 중 특출나서 그들이 독자적으로 인류 문명을 창달, 견인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건 과학적 근거가 없고, 아스퍼거 증후군만 우월하다는 주장입니다. 저는 비정형 자폐증이라 아스퍼거 증후군도 아니어서 소외감도 느낍니다. 이러한 것이 능력주의로 되어서 천재, 사무직 또는 구직을 못한 저와 같은 자폐인은 아예 배척, 비난받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자폐는 그저 저의 이름표와 같은 정체성입니다. 저는 그저 자폐라는 이름표를 가지고, 일반인처럼 평범하면서도, 우월하지 않고 제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영위하고 기획하기를 희망합니다. 또, 누군가기 자폐의 부정적 증세를 정체성으로 간주하자는 과격한 주장에 휘둘리지 않고, 저를 위협하는 자폐 증세를 치료, 관리하며 저의 자폐 정체성을 가일층 보강하고 싶습니다.

 이중공감문제는 자폐인과 자폐인 간의 의사소통이 비자폐인과 비자폐인보다 비교적 낫다는 연구결과입니다. 이중공감문제는 후속 연구에 의해서, 타당성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중공감문제에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첫째로 이중공감문제는 자폐인과 자폐인의 의사소통을 해명해도, 고기능 자폐가 아닌 자폐인 분들과 소통 방식을 해명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자폐인 간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소를 간과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둘째로, 이중공감문제는 자폐인과 자폐인 간 의사소통이 원활한 이유를 해명하지 못하고 뇌 신경학적 구조로만 신경전형인과 자폐인 간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는 불합리한 해명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중공감문제에서 제기된 두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중공감문제에 사회문화와 같은 환경적 요소가 접목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알렉산더 루리아의 문화역사적 이론이 결정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루리아는 인간은 처음에 타인을 분석한 후, 최종적으로 자기자신을 분석한다고 언명하였습니다. 인간은 사회 속의 영향 하에서 다양한 교육과 대인관계를 통해서 자기자신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등 자기인식이 구체화된다고도 언명하였습니다. 기존에 인간의 자기인식을 내재하는 불변의 속성 또는 뇌구조에서 찾는 것에 루리아는 반대했습니다. 이러한 루리아의 이론에 비추어 이중공감문제를 판단해보겠습니다.
 첫째 문제에서는, 기존의 이중공감문제가 고기능 자폐라는 생물학적 우수성에 주안점을 설정하였으나, 소통은 뇌 구조, 유전 등 생물학적 요인 외에 환경 역시 지대한 영향을 초래합니다. 레벨1 자폐스펙트럼장애의 경우, 레벨2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생물학적 요소도 존재하지만, 환경적 요소도 존재합니다. 가령, 저는 레벨2의 자폐스펙트럼장애인데, 소근육 지체와 경계선 지능으로 인해 수작업에 지장이 초래됩니다. 레벨1 자폐스펙트럼장애 분들 대부분은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제게 노력하라던가 의지박약, 혹은 일을 하라고 압박합니다. 레벨1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지신 분 중에서 저를 이해하는 한 분은 제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고 존중해주시면서, 제게 자조를 습득시켜주시기 위해 노력해주십니다. 레벨1 자폐스펙트럼장애 분은 친지 중에 자폐 레벨3이 존재하여, 저를 이해해주고 그러십니다. 이것을 단지 레벨1 자폐스펙트럼장애와 레벨2 자폐스펙트럼장애 간의 유전적, 뇌 신경학적 차이라는 문제라고 환원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레벨1과 레벨2 자폐스펙트럼장애의 경우에도 상호 이해 속에서 공감과 소통이 원활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이중공감문제에서는 동일한 레벨1과 레벨1, 레벨2와 레벨2와 같은 소통도 문화요소에 영향을 초래받는 점 역시 이해해야 합니다. 루리아와 비고츠키는 인간의 언어는 사회문화와 역사의 심대한 반영으로써, 자연과 사회의 제(諸) 대상을 일반화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결과, 각기 상이한 양자 간 외국어의 소통은 자폐인과 자폐인 간에 소통에 영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외국에서 레벨2의 자폐스펙트럼장애 분과 레벨2인 저의 소통에서, 제가 외국어로 번역해도, 영국에서의 영어와 한국어 체계의 차이로 소통과 번역에 약간 지장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대체적으로는 신경전형인보다 장기적으로 대화가 유지되었습니다. 
 둘째 문제에서, 루리아는 인간은 선행(先行)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타인의 평가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여 자기 자신의 장단점 분석 등 자기인식과 자기분석이 타인의 평가로부터 후행(後行)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자폐인 역시 자신과 동일한 자폐인에게 자신을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혹은 그렇지 않은 자기보다 빈곤하거나 기능이 약하거나 강한 자폐인에게 자신을 평가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폐인은 자기와 동일한 자폐인을 보고, 자기 역시 괜찮은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 자폐인을 차별하는 사회와 대조되는 긍정적인 타인의 평가를 통해 자기자신 역시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자신과 다른 빈곤하거나 기능이 약하거나 강한 자폐인에게 평가받은 자폐인은 혼란스럽다가도, 의사라던가 치료사, 혹은 자기와 동일한 자폐인을 만나 그들로부터 자기의 긍정적 평가를 듣고, 자기 자신 역시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이중공감문제와 루리아의 문화역사적 이론과의 접목은 기존 신경다양성과 이중공감문제가 자폐인과 자폐인이 뇌 구조상의 차이로 소통이 원활하다는 것을 넘어, 자폐인 간의 문화와 다양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자폐인 간의 동질성과 유대감이 형성된다는 점을 해명할 수 있습니다. 특히, 루리아는 유물론에 기반하여 인간의 행동이 사회를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한 만큼, 자폐인 역시 사물과 타인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여 세상을 개조시키는 역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중공감문제와 문화역사적 이론은 자폐인이 수동적인 객체에서 사회에 단순히 장애의 사회적 모델에 입각해 사회변화를 주장하는 정형화된 장애운동에 불과한 정도가 아니라, 자폐인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와 동지 자폐인을 위해 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능동적 주체임을 해명할 수 있습니다(실제로, 장애의 사회적 모델은 자폐인을 경시했던 과거의 전례로 자폐인들의 능동적 운동을 해명하지 못하는 단점이 존재합니다). 특히, 유물론은 다양한 사회적 계층과 지위 속에서의 교차를 승인합니다. 당연히 기능이 약하거나 빈곤한 자폐인은 치료라던지 지원을 요구할 수 있고, 기능이 강한 자폐인은 사회적 수용과 다양성 인정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물론상 공동목표, 즉 대의명분을 위해 자폐인 간에서는 기능이 강하던 약하던 때로는 연대하거나 공통 관심사에 공감할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자폐인 간에는 다양한 지위와 교차성을 인정하면서도 공통을 위해 노력하는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 형성되게 됩니다.
 루리아는 교육과 사물과의 접촉 역시 자기인식과 자기분석을 하는데 필요한 전제조건이라고 언명한바, 자폐인 역시 사물과 타인과 제한적 관심사가 있어도 자신의 형식대로 자기인식이라는 과정을 향해 계속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자폐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 역시 자폐인과 상이한 생물학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문화역사적으로 자폐인과 소통하기 위해 환경과 교육학적 측면에서 노력하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통합적인 측면 역시 시사할 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이중공감문제와 문화역사적 이론은 자폐인의 교육과 타인과의 교류, 사회 개조가 단순히 자폐인 개인 혹은 집단의 독점적, 배타적 이익이 아니라 사회가 자폐라는 다양성을 포용하도록 요구, 투쟁하는 자폐인들의 정당함을 뒷받침하는 명분을 제공합니다.
 제언으로는 ToM 마음이론에 비판 비판이자 도전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자폐인에게 ToM이 없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ToM 마음이론은 다음 세 가지 점으로 비판받아야 타당합니다.
 첫째, ToM을 관장하는 뇌의 거울뉴련의 경우 고기능 자폐인은 지체되었던 거울뉴런이 발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폐인은 만 30세 이후 지체된 거울뉴런이 급속도로 발전한다는 연구 및 그에 선행한 연구들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연구는 자폐인의 공감과 그에 수반되는 생물학적 토대인 거울뉴련이 전형적이지 않은 다양한 발달 속도와 양상을 표현된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둘째로, 자폐인 간에 사회문화적 맥락으로 공감의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그만큼 자폐는 단순히 뇌구조와 결손, 손상으로만 해명하기에는 곤란합니다. 공감은 다양한 양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폐인 저는 문어체를 사용하지만, 인터넷상 채팅으로 정중하게 격식있는 문어체로 “귀하께서 공감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와 같이 표현하여 공감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단일한 공감을 주장하는 ToM 이론은 문화역사적 이론과 이중공감문제, 거울뉴련 연구 등에 의해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 ToM 마음이론은 자폐인과 비자폐인을 이분화, 이원화했다는 부분으로 비판받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폐인 역시 ToM은 앞서 고찰한 두 가지 점으로 상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폐인이 비자폐인처럼 공감에 손상이 되었다는 것은 자폐인과 비자폐인 간에 오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자폐인은 연구결과, 정서적 공감이 비자폐인보다 우세합니다. 인지적 공감은 비자폐인이 우세합니다. 이 점을 고려하여, 자폐인은 비자폐인보다 인지적 공감이 약세이지만, 정서적 공감이 강한 점을 다양성으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사회는 공감에서 긍정적인 다양성을 존중하고 비폭력적 공감으로 조성되는 사회를 조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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