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마르크스: 의식은 타인과의 관계, 의식은 언어라는 현실태로 타인에게 타인을 위해 언어가 이유로 내게도 언어가 있고, 타인 없이는 의식 자체가 성립되지 않음, 이를 귀류법과 현대과학을 통한 논증

카를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저 독일이데올로기에서 의식에 대하여, ““내 주변에 대한 나의 관계가 나의 의식이다. 어떤 관계가 현존한다면, 그 관계는 나에 대해 현존한다. 동물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관계하지’ 않으며 전혀 관계하지 않는다. 동물이 다른 동물과 맺는 관계는 그 동물 자신에게는 관계로서 현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의식은 처음부터 이미 사회의 산물이다. 의식은 도대체 인간이 현존하는 한에서 그런 것으로 머무른다. 당연히 의식은 처음에는 감각에 가장 가까운 주변에 관한 의식이며, 자기의식의 능력을 지닌 개인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 그리고 타인과 국부적으로 맺는 연관에 관한 인식이다”고 언명하였다. 언어에 대해서도 이들은 “순수의식 등이라는 것은 없으며, 본래 정신은 물질에 사로잡혀 있는바, 다시 말하면 언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언어는 실천적인, 즉 다른 인간에게서도 실존하는 까닭에 또한 나 자신에게서도 실존하는 현실적인 의식이다. 언어가 생성되는 것은 의식과 마찬가지로 우선은 다른 인간들과의 교통의 욕구, 필수에서 비롯된다. 혹은 이념, 표상, 의식의 생산은 우선은 직접적으로 사람들의 물질적인 활동이나 물질적인 교통, 현실적인 생활의 언어에 편입되어 있다”고 언명하였다.
위의 언명을 명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명제: 의식은 내 주변의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되며, 언어는 타인들에게 실존함을 근거로 타인과 교통의 욕구의 필수에서 비롯된 나에게도 존재하는 타인을 전제하는 의식이 완성되어 표출되는 그 자체인 현실태(actualitas)이다.
이 중요한 명제는 귀류법을 통해 증명될 수 있다. 만약, 인간의 언어가 타인을 전제하지 않고 개인에게 단지 내재된 추상물에 불과하다고 전제하고 인간이 타인이 없어도 언어가 유지되어 이 세상에 1명 밖에 없다고 가정하자. 이때, 1명의 인간은 타인을 전제로 언어를 발화하지 못한다. 1명의 인간은 내적으로도 언어가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사회적 의미를 가진 현실로서 발현되지 못해 그 어떠한 의식도 온전히 소유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언어는 타인을 통해 발화하면서 언어발달의 궁극적 결과로 자신에게 자신 내부에서 언어로 사유하는 내적언어로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의식이 형성된 언어로써 자신 내부에서 자아인식까지 연결되도록 최후에 귀속되는데, 자신의 내부에서의 내적언어조차 사회적 산물과 타인을 전제하는 의식의 현실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정에서 인간의 언어가 타인을 전제하지 않고 개인에게 내재된 추상물이라는 견해는 인간이 타인 없이 의식과 언어가 성립되고 발화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더 나아가, 가정을 견지할 경우, 그 결과, 인류에 단 1명만 남은 사람은 그 어떠한 의식을 타인과의 상호작용과 실천을 통해 고등의 의식으로 달성하지 못하고 인지능력이 차츰 붕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 근거로 인간의 혼잣말조차 사적언어로서 타인과의 소통에서 과제를 협력하기 위해 사용하는 의식의 현실태인데, 과제를 해결해야 할 타인의 부재로 혼잣말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논하는 인간소외로서 인류가 붕괴할 가능성조차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한국계 미국 노인들 2150명을 실험한 결과, 한국계 미국인 이민자의 영어능력이 부족한데다가 사회적 고립과 언어적 고립이 동시에 이중적으로 존재할 경우, 언어적 고립으로 의료 서비스에서 자신의 건강 정보를 전달하지 못해 건강을 악화시키고 정신건강과 신체건강에 악영향을 초래된 것이 제일 심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이기도 하다(Jang Y, Yoon H, Park J, Park NS, Chiriboga DA, Kim MT. Health risks posed by social and linguistic isolation in older Korean Americans. J Am Geriatr Soc., 2021 Jul.) 마르크스가 노동으로부터 착취로 인해 인간이 소외당하여 무기력해지는 인간소외는 인간이 타인과 노동을 하면서 유적 존재로 자연과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을 발견할 수 없게 한다. 노동으로부터 소외당한 인간은 이제 아예 1명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인간이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은 인간이 노동 자체를 하지 못해 아예 소외는 노동과 계급에서 이제 인류 1명에게로 타인과의 소통부재라는 소외의 전제를 상실한 것으로, 기존 마르크스의 인간소외를 넘어선 또 다른 형태로 전환된 소외에 노출되어 이제 1명 밖에 남지 않은 가정상 인간은 소외로 인해 언어와 사회 속에서 완전한 인간소외에 의해 인류는 붕괴할 수 밖에 없게 되기까지 한다.
예상되는 반박으로 인류 1명이서 언어와 사유 능력을 형성하고 소유할 수 있다고도 주장할 수 있다. 인류가 1명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인간은 그 전에 인간이 창출한 책 등으로 언어를 습득할 수야 있다. 그러나, 1명의 인간이 이전 인류의 지식으로 습득한 지식 역시도 이전 인류의 사회적 산물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각 단계에서 선조로부터 각 세대가 물려받는 물질적 결과들이고, 생산물의 총체이며, 역사속에서 창달된 자연과의 관계이고 나아가 인간상호의 관계이다. 또한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대에 의해 변형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대에게 그들이 살아가는 조건을 미리 규정하기도 하고 발전방향을 정해주기도 하고 특수한 성격을 부여하는 그런 생산력들의 총계, 자본의 총계, 상황의 총계이기도 하다고 언명한다. 그 근거로 현대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학습한 연후에나 인공지능으로 형성되고 출시되었다는 사실, 현대 인지심리학이 유아의 언어 형성은 타인인 부모와 또래 간에 상호작용에서 형성된다는 견해를 취하는 것을 이를 뒷받침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타인과 실천하지 못하는 1명 밖에 남지 않은 인간은 그저 언어를 습득해도 타인과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실천으로써 세상을 변혁시키지 못하게 된다. 엥겔스는 자연변증법에서 인간이 타인과 공동노동을 하면서 소통의 욕구로서 형성되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제 이 인간은 공동노동의 부재가 된다. 엥겔스의 주장은 신경생리학적, 고고학적, 해부학적 근거가 있다. 첫째로, 신경생리학에서는 현대 신경생리학 연구에서 인간의 도구 사용과 언어가 뇌의 기저핵에서 동시에 진화하였다는 연구결과가 제출된 것은 엥겔스의 견해를 뒷받침하기도 한다(Thibault S, Py R, Gervasi AM, Salemme R, Koun E, Lövden M, Boulenger V, Roy AC, Brozzoli C. Tool use and language share syntactic processes and neural patterns in the basal ganglia. Science. 2021 Nov) 둘째로, 고고학적으로 인간의 화석을 방사선 탄소 연대기로 측정한 결과, 인간은 두 손으로 석가(도구)를 사용하면서 그후 상당한 기간이 지나서야 큰 뇌를 가졌다는 사실이 있다. 셋째로, 해부학적으로 인간이 직립보행으로서 노동 조건을 구비한 후에야 후두가 하강하여 발성, 발화가 가능해졌다고 보고 있다. 결국, 인간은 타인과의 노동을 통해 의식을 언어로 타인에게 전달하는 사회적 존재이다. 의식과 그 현실로 발현된 현실태인 언어는 그저 나약한 인간에게 내제되고 타인에게 검토를 받지 못한 오류에, 실천으로 검증하지 못한 형식은 언어여도 내용은 동물과 같은 소리에 불과하게 된다. 그 결과, 인간은 역사의 주체로서 사회를 변혁시킬 의식도 언어도 없는 소멸할 위기에 처한다. 이 결과는 사적유물론상의 견지상 노동이 인간과 구별을 지으면서 언어가 노동을 통해 형성된 것으로, 인간은 생물학적 속성이 기본적인 신진대사, 생식, 위험으로부터의 보호 밖에 없으며, 사적유물론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영국의 권위 있는 생태학자 Jonh Hurell Crook의 “공격적 행위가 유전적으로 제약받는 욕구라는데에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고 한 것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나와 다른 타인과, 타인과의 노동이라는 교통과, 이 의식을 현실태로 현실에 표현하는 언어가 없게 된다. 이는 단순한 노동하지 않는 동물과 구별할 의의까지 상실되는 그저 신진대사만 있는 생물학적, 동물학적인 존재로까지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
 
 

나는 우주 나이가 138억년이다라는 사실에 결사반대하고 있다. 왜냐하면,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시간의 영원성과 공간의 무한성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빅뱅 폭발은 우주가 138억년 전 특이점에서 폭발하여 시간이 생성되었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견해에 결사 반대하고 있다. 

애초에, 빅뱅에서 시간이 발생했다면, 시간의 바깥에 있는 존재는 단지 신에 불과하며 신이 세상을 창조한 것이 되니까.

특히, 유물론의 관점에서 물질은 파괴되지 않고 영원불멸하며, 물질에는 운동이 결부되어 있다. 물질 없는 운동은 없고, 마찬가지로 운동 없는 물질은 없다. 세계는 계속 물질이 시종 없이 존재하여 운동하고 있다. 우리가 물질을 보면 상대적으로 정지한 것 같아보여도, 내부에서 입자들이 계속 운동하고 있다. 이것을 확증하는 것은 에너지 보존 및 전환의 법칙으로써, 물질의 질량은 단지 형태만 변환될 뿐 완전히 소멸되지 않고 총량이 보존된다는 것이다. 

이때, 물질과 운동에는 시간과 공간이 결부된다. 시간은 물질의 존속기간과 물질의 상태가 서로 대착되는 결과를 특정짓는 물질의 존재양식이다. 그러니까, 물질이 운동하여 다른 형태로 전환(예를 들어 물이 수증기로 변하는 시간)되는 시간을 인간의 관념 없이 객관적인 물질 변화로 나타낸 것이다.

공간은 물질의 크기, 구조 및 물질계에서의 병존, 상호작용을 표현한 물질의 존재양식이다. 이 세상에 빈 공간 따위는 없으며, 하다못해 완전한 진공에서도 양자가 운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빅뱅에서 빈 공간이니 시간이 시작되었다느니 하는 것은 유물론의 관점에서는 타당하지 않다. 빅뱅 이전에도 분명 물질과 운동이 있었으며, 그렇기에 시간과 공간이 있었고, 빅뱅 이전에도 물질이 있는 이상 물질-운동과 결부된 시간은 있었으니 시간은 무한한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 중, 일부는 폭력혁명을 주장하는 분자들이 일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폭력 혁명이라는 것 자체는 허상에 불과하다. 과거, 파리코뮌에서의 바리게이트에 대해서 엥겔스는 하기 링크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https://www.marxists.org/chinese/engels/marxist.org-chinese-engels-1895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49년과 같은 파리게이트에 의한 폭력에 의한 혁명은 군사전술의 발전과, 시가전 전술의 발전, 그리고 포위전술의 발전과, 사회적 인식 상 폭력혁명에 대해서 가담하는 자들 자체를 약탈자, 폭력분자, 반역자, 사회의 찌꺼기 들로 보고 해서, 사회적으로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언명하고 있다. 

 

 거기에, 군대 자체도 대도시가 확장되면서 군대가 증대되어, 파리와 베를링 인구가 1848년 이후 3배로 증가하지 않은 반면에, 그곳을 수비하는 수비대가 3배 이상 증가했음을 지적하면서, 철도까지 발달하여 수비대의 수가 24시간 내에 능히 두 배 이상 규모를 늘릴 수 있고, 48시간 내에 군대 규모를 거대하게 확장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이렇게 대규모로 증가한 병력은 무장 측면에서 역시 대폭 향상되어, 1848년 총구에 장탄이 미끄러져 당겨지는  격발기에서, 현재는 뒤에 장전해서 작은 구멍에서 빠르게 질러가는 총기가 됐고, 그것의 발사 과정을 구식총기와 비교해서, 3배 이상 사거리가 멀어졌고, 정확성과 발사의 빨라짐을 재면 9배 이상이라고 하면서, 이전에는 효용과 교착과. 구형탄과 산탄발사의 대표가, 현재는 폭발하여 불사르는 유탄이고, 바리케이트를 훼손할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엥겔스는 이전에는 구형탄으로 방화벽을 파괴했다면, 이제는 신형탄이 강해졌다고 하면서, 폭력 혁명에 회의적인 견해를 표명하였다. 

 

  그러면서, 엥겔스는 소수정예에 의한 혁명은 자각 없는 대중을 선두에 서게 해서 혁명을 수행하는 것에 종언을 선언하고, 대중 스스로가 현안에 참가하도록 가르치고 일깨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폭력 혁명이 불가능함은 이미 일본 적군파의 사례만을 놓고 봐도 입증된다. 이는 적군파가 일본에서 좌경모험주의에 매몰됨으로 인해, 혁명에 실패한 것이 그렇다. 

 

 엥겔스의 논의를 적군파에 적용해보면, 적군파는 소수정예가 산장을 무장으로 점거하여, 인질극을 하기도 하고, 은행강도도 했으나, 이미 강화된 국방력 아니 경찰이 적군파를 진압했으니 경찰력으로마저도 처참히 붕괴되는 수준이었다. 거기에, 이후 적군파들은 일본 인민에 의해 범죄자, 룸펜 등으로 낙인되게 되었으니, 엥겔스의 지적은 정확하다. 또한, 일본 자체가 우경화되고, 일본 공산당 등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자기들 이익에 급급한 태도를 보이니, 더더욱 엥겔스가 소수정예로서의 혁명이 불가능함을 언명한 것은 더욱 타당성을 얻게 된다. 따라서, 엥겔스의 견지에서 보면, 적군파든 폭력혁명을 장난이든 진실이든 주장하는 것은 좌경모험주의에 불과하고 대중과 동떨어진 것이다. 

 

 

레닌: 생생한 지각에서 추상적 사유로, 그리고 추상적 사유에서 실천으로. 이것이 진리를 인식하는 변증법의 오솔길이다.

 

감각적 인식

 

감각기관을 통해서 신경섬유를 통해 대뇌에 전달되고 자극들이 감각으로 변형되는 대뇌부위로 전달된다.

 

감각 -> 판단

 

레닌: 감각을 객관세계의 주관적 영상

 

각 개개인마다 감각에 대한 사유가 외부세계가 아닌 개인으로서 개성과 그 개인이 속한 사회 환경에 따라 사유하기가 천차만별.

 

한 감각기관이 부정확하면, 다른 감각기관을 사용. 두 눈으로 믿지 못하면, 두 손으로 접촉. 이로 불충분하면, 도구, 실험, 실천경험 등에 호소. -> 감각은 사물에 대한 정확한 관념을 제공.

 

지각, 관념 -> 감각적 인식

 

관념은 인간의 정신 속에서 이전 지각들의 재생. 이전에 친구를 보지 못했어도, 친구의 영상을 정신 속에서 재생시킴.

 

 

추상적, 논리적 사유

 

감각은 사물 외모만 제공. 사물의 내적 본성, 본질 및 발전법칙의 해명 불가.

 

감각: 전구 -> 전기의 일정한 속도로 운동하는 전자들의 흐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함.

 

논리적, 추상적 사유: 사물 본질에 관한 인식만이 실천활동에서 지침으로 기여. 인식에서의 발전에서 질적으로 새롭고 고차적인 단계.

 

개념 또는 추상: “나무”, “동물”, “사회“, “인간”, “계급”, “”, “생산등으로, 단편적으로만 본질적, 일반적인 것을 반영하여 제공,

 

레닌: 가장 단순한 개념조차도 자연을 더욱 깊이 있고, 충분하고, 진정하게 반영한다.

 

감각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의 이행형식은 인식의 과정에서, 즉 인식이 저차 단계에서 고차 단계로 운동하는 과정에서 실천을 통한 변증법적 비약에 해당.

 

중요한 것, 부차적인 것, 내부적인 것, 외부적인 것의 구별.

 

인간 실천의 고도발전과 변혁이 더욱 강해질수록 인간의 의식은 더욱 깊어지고 더욱 다양화.

 

개념은 변화하는 세계의 발전하는 실천을 반영. 개념의 융통성, 유동성을 통해 변화하는 세상에 기존 개념의 확장과, 새로운 개념의 등장.

 

판단, 결론-> 개념을 토대로 형성.

 

사회주의는 평화이다.

 

사회주의, 평화라는 개념. 동시에, 사회주의는 평화라는 명제는 사회주의는 공동소유를 토대로 삼는 사회체계이다등등의 판단이 없으면 개념의 이해 불능.

 

개념과 판단의 상호연관 -> 결론

 

가설, 이론 -> 개념, 판단, 결론들의 복잡한 결합,

 

 

감각적, 논리적인 것의 통일

 

감각적 추상적인 것은 통일되어 물질세계를 반영. 두 단게 인식은 인간 신경계의 생리를 통해 발생. 

 

추상적 사유 -> 감각 필요. (감각기관에 의해 제공된 정보가 개념들을 형성하는데 유일한 재료)

 

추상적 사유는 감각들의 토대, 감각적 인식보다 더 깊이 파고들어 이 인식을 풍부하게 하며 이 인식의 태두리를 확장. 

 

추상적 사유와 감각은 불가분의 관계. 

물질 -> 객관적 실재로서, 인간 의식 외부에 존재하면서 인간 의식에 반영. 

 

레닌: 물질은 감각에 의해 인간에게 주어지는 객관적 실재를 가리키는 철핟적 범주이며. 이 객관적 실재는 우리의 감각에 의해 복사되고, 촬영되고, 반영되지만, 이 감각들로부터 독립되어 존재한다.

=> 세계가 인식됨을 강조, 인간 이성의 무한한 전망의 가능성 전개, 정신 자극을 통한 인간이 세상의 가장 깊은 비밀을 간파할 수 있도록 함.

 

물질이 1차적 -> 물질의 창조X, 물질의 파괴X, 물질은 현존하는 내적의 궁극적 원인 =>신의 존재X, 초자연적힘X

 

과학의 진보, 인간의 제 실천적 경험 -> 물질이 객관적 실재로서 존재함과 물질의 무한함을 증명 => 인간 주위의 세계는 물질세계

 

물질은 무 에서 나온다X, 흔적 없이 소멸X

 

한 사물의 파괴 -> 다른 사물의 산생 => 다른 사물의 파괴는 제 3의 사물 ==> 무한한 계속

 

 

감성적 경험(직접 현실의 제 현상을 반영): 번개라고 관찰해도 오랜기간 동안 번개라는 과정의 본질을 알지 못함 =>사고에 의해서 번개의 과정을 파악(물리학의 성과, 전기에 관한 학설의 성공, 무수한 사실의 일반화)

 

사고: 감각 및 지각에 의해 매개 => 인식 과정에 있어서 새로운 질적으로 이행하는 독자적 단계, 제 현상의 내적, 합법칙적 연관의 의식으로의 향함. 

이론적 사고의 본질: 제 현상에 있어서의 보편적인 인식으로 올라가는 것, 개별적 현상과 그것의 개개의 성질을 인식하는 감성적 직관에는 존재 불가

 

감성적 사고에서 추상적 사고로의 이행: 인식의 발전에 있어서의 질적인 비약

 

사고: 추상(대상의 개개적 측면을 제거한 것)이라는 형태로 현실을 반영, 대상에 관한 직접적인 표상으로부터 떨어져 그것에 있어서의 주요한 것 본질적인 것을 선별한 것

 

구체적에서 추상적으로의 이행: 진리로부터 접근, 물질 자연법칙, 가치 추상 등 과학적 추상은 자연을 완전히 반영

 

 

언어에는 상부구조가 없다.

언어는 토대, 즉 상부구조가 없다. 그 이유는, 상부구조란 경제적 토대 위에 선 정치, 법률, 예술, 종교, 철학적 토대이고,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상부구조, 10월 혁명 후 러시아는 교체된 사회주의적 상부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과거에는 자본주의식의 법에서는 떨어진 나뭇가지만 주워도 절도죄로 처벌하였다면, 사회주의에서는 나뭇가지와 같은 자연물은 토지라는 소유권이 상실되고 국유화되어서 그걸 줍는다고 처벌하지 않는다.

그러면,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 이후 언어도 자본주의 언어가 사회주의 언어로 바뀌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러시아어는 혁명 후에도 상실되거나 변경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었다.

 

상부구조는 자신이 처해진 낡은 제도를 위해 봉사하기도 하고, 혁명 후에는 그 낡은 제도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만, 언어는 모든 계급들의 의사소통의 욕구 충족을 위해 수백 세대를 거쳐 공고히 축적된 것인데, 그러한 언어를 청산하게 되면 혼란이 발생하게 되므로, 청산할 수 없다.

 

언어는 계급없이 모두에게 평등하다.

스탈린은 언어학에 있어서, 언어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들이 각각 사용하는 계급적인 언어가 아니라, 전 인민적으로 평등하게 복무, 봉사하는 것이 언어라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서, 부자가 사용하는 언어가 있다고 해도, 일반 서민이 사용하지 않으면, 부자만 사용하다가 잊혀지게 된다. , 일반 서민 간에 사용하는 언어도 일반 서민들 중 일부 집단만 사용하면 그 언어는 잊혀지게, 사장되게 된다.

결국, 언어에는 계급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일부에서는 방언이나 통속어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일부 집단이 사용하는 언어가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서 스탈린은 방언과 통속어가 자기의 문법 구조와 기본 어휘가 없고 그것을 민족어에서 빌어쓰고 있으며, 방언과 통속어는 협소한 사용으로 인해 교통수단으로서 무용지물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스탈린의 입장에서는 방언이나 통속어는 아무런 자주성도 없으며, 전인민적 언어의 곁가지에 불과하게 된다.

 

언어의 특징이란?

그렇다면 언어의 특징은 무엇인가? 언어는 사회적이다. 언어 없이 사회 없고, 언어는 사회의 발생과 함께 발생하였고, 사회의 소멸과 함께 언어는 소멸하게 된다.

 

언어는 사상을 교환하는 도구로서, 문장 내의 단어와 단어 결합을 통하여 사상의 교환을 통해 부를 축적하게 되는 사람들의 행위를 조절하게 된다.

 

 그렇기에, 공통적인 언어가 없으면 사회는 생산을 중지하고 사회로서의 존재를 그만두게 될 수밖에 없다. 언어는 교통의 도구와 동시에 투쟁과 사회발전의 도구이다.

언어 중에 있는 모든 단어는 어휘구성을 이루고, 그 중 주된 것은 기본어휘이다. 거기에, 근간적 단어들이 포함되어 있다.

어휘구성만으로는 언어를 이루지 못한다. , 문법이 필요하다. 문법(형태론, 문장론)은 단어의 변화와 문장 내에서의 단어 결합에 대한 규칙의 집대성이다. 따라서, 문법에 의해서만 언어는 인간의 사상을 물질적인 언어적 외피로 씌울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된다.

문법은 구체적인 단어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아무런 구체성도 없는 단어를 고려하여 단어의 변화 규칙을 부여해주며, 문장의 구체적 형태와 무관하게 모든 문장에 문장 작성 규칙을 부여한다. 그러므로, 문법은 단어나 문장 속에 특수한 것과 구체적인 것을 추상하고, 문장에서의 단어 변화와 단어 결합에 기초에 놓여 있는 일반적인 것을 취해, 이로부터 문법적 규칙과 법칙을 만드는 것이다. 문법은, 인간사유의 장구한 추상 활동의 결과이며, 사유의 거대한 성과의 지표이다.

  언어는 상부구조와 달리 토대가 청산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토대가 청산되기 전에 토대의 상태와는 관계 없이 자기 의 어휘 구성 내에서 변화를 일으킨다. 

 그렇지만, 이는 점진적으로 새로운 단어들로써 현존 어휘를 보충하는 방법으로 변화한다. 왜냐하면, 수세기 동안 축적된 기본 어휘를 청산하면 언어라는 교통에 혼잡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문법의 경우는 기본어휘보다 더더욱 점진적으로 변화하여 문법 구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 완성되며 자기의 규칙을 개선 정밀화하고 새로운 규칙으로서 풍부해진다. 그러면서도, 문법의 기초는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보존된다.  

 

언어의 강제적 동화에 따른 저항성과 견인성이란?

특히, 언어의 강제적 동화에 따른 견인성에 대한 스탈린의 견해는 주목할만하다. 스탈린에 의하면, 언어가 강제로 동화되려고 하면 견인성은 그 문법 구조와 기본 어휘의 저항성으로 변하지 않고, 견인성에 기인하여 계속 계승된다. 예를 들어, 수백년 동안 터키(튀르기에) 동화주의자들이 발칸 언어를 소멸하려고 애를 써도, 문법 구조와 기본 어휘가 보존되어 이 발칸 언어는 소멸하지 않았다.

 

, 스탈린에 의하면, 언어와 그 구조는 어느 한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여러 세대 특히 노예제 시대의 빈약한 기초 어휘와 자기의 문법 구조를 가진 기초가 이뤄진 언어일 수 있다고도 하였다. 이때는, 언어가 복잡하지 않았지만, 계급과 문자의 출현과 문서거래를 요하는 국가의 출현, 문학발전이 발생하였다. 이에, 국가와 민족이 발생하였고, 언어 역시 민족어로 분화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경향으로 마르크스주의는 언어가 완전히 새 언어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을 점차 일으켜서 축적하여, 낡은 질이 소멸하게 발전하게 된다.

 

언어의 교차성

마르에 의하면, 한 개의 민족과 한 개의 민족 언어가 교차하게 되면 이들의 교차된 언어가 제 3의 언어를 얻게 된다.

 

이에, 언어의 교차에 관한 스탈린이 비판한 학설 역시 주목할만하다. 언어의 교차(교배)를 통해 제 3의 언어를 얻는 것은 잘못이고, 사실 상 교차 시에 그 중 한 언어가 승리하여 자기의 문법 구조와 자기의 기본 어휘를 보존하고, 자기 발전의 내적 법칙에 따라 발전하지만, 패배한 언어는 점점 자기의 질을 상실하고 점차 사멸하게 된다.

 

예컨대, 러시아어는 다른 인민들과의 교차에서 승리를 하였고, 물론 다른 교차된 언어로 일부 발전이 있지만, 그것은 러시아어를 강화하게 된 것이다.

 

국제어의 탄생

언어의 교차에 대해서 거론한 것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여전하여 각 민족 간 평등이 존재하지 않고 투쟁적이어서, 한 언어가 승리하고 한 언어가 패배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이후 스탈린의 연설에 의하면, 하나의 공통어로 언어들이 합류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는, 전 세계적 규모에서 사회주의 승리 이후, 민족적 평등으로 민족의 동화, 억압이 제거되어서 각 민족 간 언어가 협조 형식으로 자유롭게 상호 풍부해지게 되는 것을 말하였다. 그렇게 되어, 한 언어가 승리하고 한 언어가 패하여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수백 개의 민족어가 장기간에 걸친 민족들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협조의 결과 수 백개의 민족어들이 처음에 가장 풍부한 지대어에서, 지대어가 하나 되는 국제어로 이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

언어는 토대 위에 선 상부구조가 아니다. 또한, 언어는 계급적이지 않고, 모두에게 평등하게 봉사, 복무하는 교통수단이다. 언어는 사회적으로 사상의 교환을 통해 발생하여, 사회가 없어지면 언어가 소멸하게 되고, 언어의 교통수단이 마비되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므로, 언어는 수 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새로운 것을 취하고 낡은 것을 버리면서 강화되고 진화되어 갔다. 

 언어란, 한 민족과 한 민족이 서로 교차하면 한 언어가 승리하고, 한 언어가 패배하여 승리한 언어가 더더욱 보존된다. 그렇지만, 사회주의 세계에서는 각 민족이 평등해져서, 서로가 협조하여 언어가 더욱 풍성해지고 국제어가 탄생하게 된다. 이것이 스탈린 언어학의 결론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