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마르크스: 의식은 타인과의 관계, 의식은 언어라는 현실태로 타인에게 타인을 위해 언어가 이유로 내게도 언어가 있고, 타인 없이는 의식 자체가 성립되지 않음, 이를 귀류법과 현대과학을 통한 논증

카를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저 독일이데올로기에서 의식에 대하여, ““내 주변에 대한 나의 관계가 나의 의식이다. 어떤 관계가 현존한다면, 그 관계는 나에 대해 현존한다. 동물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관계하지’ 않으며 전혀 관계하지 않는다. 동물이 다른 동물과 맺는 관계는 그 동물 자신에게는 관계로서 현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의식은 처음부터 이미 사회의 산물이다. 의식은 도대체 인간이 현존하는 한에서 그런 것으로 머무른다. 당연히 의식은 처음에는 감각에 가장 가까운 주변에 관한 의식이며, 자기의식의 능력을 지닌 개인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 그리고 타인과 국부적으로 맺는 연관에 관한 인식이다”고 언명하였다. 언어에 대해서도 이들은 “순수의식 등이라는 것은 없으며, 본래 정신은 물질에 사로잡혀 있는바, 다시 말하면 언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언어는 실천적인, 즉 다른 인간에게서도 실존하는 까닭에 또한 나 자신에게서도 실존하는 현실적인 의식이다. 언어가 생성되는 것은 의식과 마찬가지로 우선은 다른 인간들과의 교통의 욕구, 필수에서 비롯된다. 혹은 이념, 표상, 의식의 생산은 우선은 직접적으로 사람들의 물질적인 활동이나 물질적인 교통, 현실적인 생활의 언어에 편입되어 있다”고 언명하였다.
위의 언명을 명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명제: 의식은 내 주변의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되며, 언어는 타인들에게 실존함을 근거로 타인과 교통의 욕구의 필수에서 비롯된 나에게도 존재하는 타인을 전제하는 의식이 완성되어 표출되는 그 자체인 현실태(actualitas)이다.
이 중요한 명제는 귀류법을 통해 증명될 수 있다. 만약, 인간의 언어가 타인을 전제하지 않고 개인에게 단지 내재된 추상물에 불과하다고 전제하고 인간이 타인이 없어도 언어가 유지되어 이 세상에 1명 밖에 없다고 가정하자. 이때, 1명의 인간은 타인을 전제로 언어를 발화하지 못한다. 1명의 인간은 내적으로도 언어가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사회적 의미를 가진 현실로서 발현되지 못해 그 어떠한 의식도 온전히 소유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언어는 타인을 통해 발화하면서 언어발달의 궁극적 결과로 자신에게 자신 내부에서 언어로 사유하는 내적언어로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의식이 형성된 언어로써 자신 내부에서 자아인식까지 연결되도록 최후에 귀속되는데, 자신의 내부에서의 내적언어조차 사회적 산물과 타인을 전제하는 의식의 현실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정에서 인간의 언어가 타인을 전제하지 않고 개인에게 내재된 추상물이라는 견해는 인간이 타인 없이 의식과 언어가 성립되고 발화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더 나아가, 가정을 견지할 경우, 그 결과, 인류에 단 1명만 남은 사람은 그 어떠한 의식을 타인과의 상호작용과 실천을 통해 고등의 의식으로 달성하지 못하고 인지능력이 차츰 붕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 근거로 인간의 혼잣말조차 사적언어로서 타인과의 소통에서 과제를 협력하기 위해 사용하는 의식의 현실태인데, 과제를 해결해야 할 타인의 부재로 혼잣말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논하는 인간소외로서 인류가 붕괴할 가능성조차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한국계 미국 노인들 2150명을 실험한 결과, 한국계 미국인 이민자의 영어능력이 부족한데다가 사회적 고립과 언어적 고립이 동시에 이중적으로 존재할 경우, 언어적 고립으로 의료 서비스에서 자신의 건강 정보를 전달하지 못해 건강을 악화시키고 정신건강과 신체건강에 악영향을 초래된 것이 제일 심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이기도 하다(Jang Y, Yoon H, Park J, Park NS, Chiriboga DA, Kim MT. Health risks posed by social and linguistic isolation in older Korean Americans. J Am Geriatr Soc., 2021 Jul.) 마르크스가 노동으로부터 착취로 인해 인간이 소외당하여 무기력해지는 인간소외는 인간이 타인과 노동을 하면서 유적 존재로 자연과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을 발견할 수 없게 한다. 노동으로부터 소외당한 인간은 이제 아예 1명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인간이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은 인간이 노동 자체를 하지 못해 아예 소외는 노동과 계급에서 이제 인류 1명에게로 타인과의 소통부재라는 소외의 전제를 상실한 것으로, 기존 마르크스의 인간소외를 넘어선 또 다른 형태로 전환된 소외에 노출되어 이제 1명 밖에 남지 않은 가정상 인간은 소외로 인해 언어와 사회 속에서 완전한 인간소외에 의해 인류는 붕괴할 수 밖에 없게 되기까지 한다.
예상되는 반박으로 인류 1명이서 언어와 사유 능력을 형성하고 소유할 수 있다고도 주장할 수 있다. 인류가 1명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인간은 그 전에 인간이 창출한 책 등으로 언어를 습득할 수야 있다. 그러나, 1명의 인간이 이전 인류의 지식으로 습득한 지식 역시도 이전 인류의 사회적 산물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각 단계에서 선조로부터 각 세대가 물려받는 물질적 결과들이고, 생산물의 총체이며, 역사속에서 창달된 자연과의 관계이고 나아가 인간상호의 관계이다. 또한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대에 의해 변형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대에게 그들이 살아가는 조건을 미리 규정하기도 하고 발전방향을 정해주기도 하고 특수한 성격을 부여하는 그런 생산력들의 총계, 자본의 총계, 상황의 총계이기도 하다고 언명한다. 그 근거로 현대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학습한 연후에나 인공지능으로 형성되고 출시되었다는 사실, 현대 인지심리학이 유아의 언어 형성은 타인인 부모와 또래 간에 상호작용에서 형성된다는 견해를 취하는 것을 이를 뒷받침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타인과 실천하지 못하는 1명 밖에 남지 않은 인간은 그저 언어를 습득해도 타인과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실천으로써 세상을 변혁시키지 못하게 된다. 엥겔스는 자연변증법에서 인간이 타인과 공동노동을 하면서 소통의 욕구로서 형성되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제 이 인간은 공동노동의 부재가 된다. 엥겔스의 주장은 신경생리학적, 고고학적, 해부학적 근거가 있다. 첫째로, 신경생리학에서는 현대 신경생리학 연구에서 인간의 도구 사용과 언어가 뇌의 기저핵에서 동시에 진화하였다는 연구결과가 제출된 것은 엥겔스의 견해를 뒷받침하기도 한다(Thibault S, Py R, Gervasi AM, Salemme R, Koun E, Lövden M, Boulenger V, Roy AC, Brozzoli C. Tool use and language share syntactic processes and neural patterns in the basal ganglia. Science. 2021 Nov) 둘째로, 고고학적으로 인간의 화석을 방사선 탄소 연대기로 측정한 결과, 인간은 두 손으로 석가(도구)를 사용하면서 그후 상당한 기간이 지나서야 큰 뇌를 가졌다는 사실이 있다. 셋째로, 해부학적으로 인간이 직립보행으로서 노동 조건을 구비한 후에야 후두가 하강하여 발성, 발화가 가능해졌다고 보고 있다. 결국, 인간은 타인과의 노동을 통해 의식을 언어로 타인에게 전달하는 사회적 존재이다. 의식과 그 현실로 발현된 현실태인 언어는 그저 나약한 인간에게 내제되고 타인에게 검토를 받지 못한 오류에, 실천으로 검증하지 못한 형식은 언어여도 내용은 동물과 같은 소리에 불과하게 된다. 그 결과, 인간은 역사의 주체로서 사회를 변혁시킬 의식도 언어도 없는 소멸할 위기에 처한다. 이 결과는 사적유물론상의 견지상 노동이 인간과 구별을 지으면서 언어가 노동을 통해 형성된 것으로, 인간은 생물학적 속성이 기본적인 신진대사, 생식, 위험으로부터의 보호 밖에 없으며, 사적유물론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영국의 권위 있는 생태학자 Jonh Hurell Crook의 “공격적 행위가 유전적으로 제약받는 욕구라는데에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고 한 것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나와 다른 타인과, 타인과의 노동이라는 교통과, 이 의식을 현실태로 현실에 표현하는 언어가 없게 된다. 이는 단순한 노동하지 않는 동물과 구별할 의의까지 상실되는 그저 신진대사만 있는 생물학적, 동물학적인 존재로까지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
 
 

 데카르트 이래로 자아는 선천적, 선험적으로 부여된다는 관념론적 이론이 득세하였다. 이러한 이론에 득세하여 선천적으로 부여된 타인을 추론하는 기재가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다는 마음이론(Theory of Mind) ToM이 제출되기도 했다. 마음이론 ToM은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반박이 가능하다. 마르크스는 "내 주변에 대한 나의 관계가 나의 의식이다. 어떤 관계가 현존한다면, 그 관계는 나에 대해 현존한다. 동물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관계하지않으며 전혀 관계하지 않는다. 동물이 다른 동물과 맺는 관계는 그 동물 자신에게는 관계로서 현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의식은 처음부터 이미 사회의 산물이다. 의식은 도대체 인간이 현존하는 한에서 그런 것으로 머무른다. 당연히 의식은 처음에는 감각에 가장 가까운 주변에 관한 의식이며, 자기의식의 능력을 지닌 개인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 그리고 타인과 국부적으로 맺는 연관에 관한 인식이다.고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언명하였다. 마르크스는 1844년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인간의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고도 언명하였다. 마르크스 견해에 의거하여, 소련에서 자아의 형성은 사회적 조건과 역사적 상황, 그리고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우선이라는 견해를 취하였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와 소련 심리학의 관점에서 현대의 마음이론 ToM은 인간의 의식을 선험화, 내재화 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를 근거하는 것은 자폐인과 비자폐인의 상호간 이해 결여가 자폐인의 소통에서의 문제라는 이중공감문제이다. 만약, 마음이론 ToM이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자폐인은 마음이론 ToM이 없으므로 주체로서 타인과 소통하지 못한 채 고립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폐인은 자신과 유사한 자폐인과의 소통에 대체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이 이중공감문제의 근거이다. 이중공감문제는 후속연구들에 의해 뒷받침, 지지받고 있다. 따라서, 자폐인이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ToM의 결여로 소통하지 못한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것은 두 가지 사회적 조건이 자폐인이 직면하는 주체로서의 타인과 소통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첫째 사회적 조건으로, 자폐인의 소통문제가 비자폐인이 많은 사회로 인해 자폐인이 자신과 유사한 자폐인을 만나 소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사회적 조건으로, 자폐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다. 결코 자폐인의 ToM의 결손이 자폐인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인간에게는 선천적으로 내재된 ToM이라는 것은 부재하다. 그 근거로서, 현대 뇌과학의 이해는 인간의 뇌수는 단지 단순한 감각기관을 만드는 것에 인지적 발달이 약한 생쥐와 유사한 수 정도로 유전이 특화되었지, 고도로 조직된 인지까지 인간의 뇌가 복잡하게 게놈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은 인간인 이상, 자폐인이던 비자폐인이던 가리지 않고, 타인과 사회적 조건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의 언명이 적용된다. 이로써, 인간의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본질이 해명될 있다. 즉, 마르크스가 주장한 인간의 자아의식의 형성이 이중공감문제를 통해 전체 인간이 자아의식이 선천적이거나 내재적이지 않고 타인과 사회적 조건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자폐인, 비자폐인 가리지 않고, 전체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을 명백히 근거하는 것이다. 

감성적 경험(직접 현실의 제 현상을 반영): 번개라고 관찰해도 오랜기간 동안 번개라는 과정의 본질을 알지 못함 =>사고에 의해서 번개의 과정을 파악(물리학의 성과, 전기에 관한 학설의 성공, 무수한 사실의 일반화)

 

사고: 감각 및 지각에 의해 매개 => 인식 과정에 있어서 새로운 질적으로 이행하는 독자적 단계, 제 현상의 내적, 합법칙적 연관의 의식으로의 향함. 

이론적 사고의 본질: 제 현상에 있어서의 보편적인 인식으로 올라가는 것, 개별적 현상과 그것의 개개의 성질을 인식하는 감성적 직관에는 존재 불가

 

감성적 사고에서 추상적 사고로의 이행: 인식의 발전에 있어서의 질적인 비약

 

사고: 추상(대상의 개개적 측면을 제거한 것)이라는 형태로 현실을 반영, 대상에 관한 직접적인 표상으로부터 떨어져 그것에 있어서의 주요한 것 본질적인 것을 선별한 것

 

구체적에서 추상적으로의 이행: 진리로부터 접근, 물질 자연법칙, 가치 추상 등 과학적 추상은 자연을 완전히 반영

 

 

언어에는 상부구조가 없다.

언어는 토대, 즉 상부구조가 없다. 그 이유는, 상부구조란 경제적 토대 위에 선 정치, 법률, 예술, 종교, 철학적 토대이고,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상부구조, 10월 혁명 후 러시아는 교체된 사회주의적 상부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과거에는 자본주의식의 법에서는 떨어진 나뭇가지만 주워도 절도죄로 처벌하였다면, 사회주의에서는 나뭇가지와 같은 자연물은 토지라는 소유권이 상실되고 국유화되어서 그걸 줍는다고 처벌하지 않는다.

그러면,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 이후 언어도 자본주의 언어가 사회주의 언어로 바뀌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러시아어는 혁명 후에도 상실되거나 변경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었다.

 

상부구조는 자신이 처해진 낡은 제도를 위해 봉사하기도 하고, 혁명 후에는 그 낡은 제도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만, 언어는 모든 계급들의 의사소통의 욕구 충족을 위해 수백 세대를 거쳐 공고히 축적된 것인데, 그러한 언어를 청산하게 되면 혼란이 발생하게 되므로, 청산할 수 없다.

 

언어는 계급없이 모두에게 평등하다.

스탈린은 언어학에 있어서, 언어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들이 각각 사용하는 계급적인 언어가 아니라, 전 인민적으로 평등하게 복무, 봉사하는 것이 언어라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서, 부자가 사용하는 언어가 있다고 해도, 일반 서민이 사용하지 않으면, 부자만 사용하다가 잊혀지게 된다. , 일반 서민 간에 사용하는 언어도 일반 서민들 중 일부 집단만 사용하면 그 언어는 잊혀지게, 사장되게 된다.

결국, 언어에는 계급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일부에서는 방언이나 통속어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일부 집단이 사용하는 언어가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서 스탈린은 방언과 통속어가 자기의 문법 구조와 기본 어휘가 없고 그것을 민족어에서 빌어쓰고 있으며, 방언과 통속어는 협소한 사용으로 인해 교통수단으로서 무용지물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스탈린의 입장에서는 방언이나 통속어는 아무런 자주성도 없으며, 전인민적 언어의 곁가지에 불과하게 된다.

 

언어의 특징이란?

그렇다면 언어의 특징은 무엇인가? 언어는 사회적이다. 언어 없이 사회 없고, 언어는 사회의 발생과 함께 발생하였고, 사회의 소멸과 함께 언어는 소멸하게 된다.

 

언어는 사상을 교환하는 도구로서, 문장 내의 단어와 단어 결합을 통하여 사상의 교환을 통해 부를 축적하게 되는 사람들의 행위를 조절하게 된다.

 

 그렇기에, 공통적인 언어가 없으면 사회는 생산을 중지하고 사회로서의 존재를 그만두게 될 수밖에 없다. 언어는 교통의 도구와 동시에 투쟁과 사회발전의 도구이다.

언어 중에 있는 모든 단어는 어휘구성을 이루고, 그 중 주된 것은 기본어휘이다. 거기에, 근간적 단어들이 포함되어 있다.

어휘구성만으로는 언어를 이루지 못한다. , 문법이 필요하다. 문법(형태론, 문장론)은 단어의 변화와 문장 내에서의 단어 결합에 대한 규칙의 집대성이다. 따라서, 문법에 의해서만 언어는 인간의 사상을 물질적인 언어적 외피로 씌울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된다.

문법은 구체적인 단어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아무런 구체성도 없는 단어를 고려하여 단어의 변화 규칙을 부여해주며, 문장의 구체적 형태와 무관하게 모든 문장에 문장 작성 규칙을 부여한다. 그러므로, 문법은 단어나 문장 속에 특수한 것과 구체적인 것을 추상하고, 문장에서의 단어 변화와 단어 결합에 기초에 놓여 있는 일반적인 것을 취해, 이로부터 문법적 규칙과 법칙을 만드는 것이다. 문법은, 인간사유의 장구한 추상 활동의 결과이며, 사유의 거대한 성과의 지표이다.

  언어는 상부구조와 달리 토대가 청산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토대가 청산되기 전에 토대의 상태와는 관계 없이 자기 의 어휘 구성 내에서 변화를 일으킨다. 

 그렇지만, 이는 점진적으로 새로운 단어들로써 현존 어휘를 보충하는 방법으로 변화한다. 왜냐하면, 수세기 동안 축적된 기본 어휘를 청산하면 언어라는 교통에 혼잡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문법의 경우는 기본어휘보다 더더욱 점진적으로 변화하여 문법 구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 완성되며 자기의 규칙을 개선 정밀화하고 새로운 규칙으로서 풍부해진다. 그러면서도, 문법의 기초는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보존된다.  

 

언어의 강제적 동화에 따른 저항성과 견인성이란?

특히, 언어의 강제적 동화에 따른 견인성에 대한 스탈린의 견해는 주목할만하다. 스탈린에 의하면, 언어가 강제로 동화되려고 하면 견인성은 그 문법 구조와 기본 어휘의 저항성으로 변하지 않고, 견인성에 기인하여 계속 계승된다. 예를 들어, 수백년 동안 터키(튀르기에) 동화주의자들이 발칸 언어를 소멸하려고 애를 써도, 문법 구조와 기본 어휘가 보존되어 이 발칸 언어는 소멸하지 않았다.

 

, 스탈린에 의하면, 언어와 그 구조는 어느 한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여러 세대 특히 노예제 시대의 빈약한 기초 어휘와 자기의 문법 구조를 가진 기초가 이뤄진 언어일 수 있다고도 하였다. 이때는, 언어가 복잡하지 않았지만, 계급과 문자의 출현과 문서거래를 요하는 국가의 출현, 문학발전이 발생하였다. 이에, 국가와 민족이 발생하였고, 언어 역시 민족어로 분화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경향으로 마르크스주의는 언어가 완전히 새 언어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을 점차 일으켜서 축적하여, 낡은 질이 소멸하게 발전하게 된다.

 

언어의 교차성

마르에 의하면, 한 개의 민족과 한 개의 민족 언어가 교차하게 되면 이들의 교차된 언어가 제 3의 언어를 얻게 된다.

 

이에, 언어의 교차에 관한 스탈린이 비판한 학설 역시 주목할만하다. 언어의 교차(교배)를 통해 제 3의 언어를 얻는 것은 잘못이고, 사실 상 교차 시에 그 중 한 언어가 승리하여 자기의 문법 구조와 자기의 기본 어휘를 보존하고, 자기 발전의 내적 법칙에 따라 발전하지만, 패배한 언어는 점점 자기의 질을 상실하고 점차 사멸하게 된다.

 

예컨대, 러시아어는 다른 인민들과의 교차에서 승리를 하였고, 물론 다른 교차된 언어로 일부 발전이 있지만, 그것은 러시아어를 강화하게 된 것이다.

 

국제어의 탄생

언어의 교차에 대해서 거론한 것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여전하여 각 민족 간 평등이 존재하지 않고 투쟁적이어서, 한 언어가 승리하고 한 언어가 패배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이후 스탈린의 연설에 의하면, 하나의 공통어로 언어들이 합류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는, 전 세계적 규모에서 사회주의 승리 이후, 민족적 평등으로 민족의 동화, 억압이 제거되어서 각 민족 간 언어가 협조 형식으로 자유롭게 상호 풍부해지게 되는 것을 말하였다. 그렇게 되어, 한 언어가 승리하고 한 언어가 패하여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수백 개의 민족어가 장기간에 걸친 민족들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협조의 결과 수 백개의 민족어들이 처음에 가장 풍부한 지대어에서, 지대어가 하나 되는 국제어로 이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

언어는 토대 위에 선 상부구조가 아니다. 또한, 언어는 계급적이지 않고, 모두에게 평등하게 봉사, 복무하는 교통수단이다. 언어는 사회적으로 사상의 교환을 통해 발생하여, 사회가 없어지면 언어가 소멸하게 되고, 언어의 교통수단이 마비되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므로, 언어는 수 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새로운 것을 취하고 낡은 것을 버리면서 강화되고 진화되어 갔다. 

 언어란, 한 민족과 한 민족이 서로 교차하면 한 언어가 승리하고, 한 언어가 패배하여 승리한 언어가 더더욱 보존된다. 그렇지만, 사회주의 세계에서는 각 민족이 평등해져서, 서로가 협조하여 언어가 더욱 풍성해지고 국제어가 탄생하게 된다. 이것이 스탈린 언어학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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